부동산 묵시록2: 제 2의 변곡점/ 윤리적 최전선이 사라지다

초이노믹스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이 IMF만큼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악영향이라는 면에서는 IMF를 훌쩍 능가한다고 본다.
 

IMF가 바꾼 국민 의식

IMF는 국민들에게 고용의 안정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IMF 때 수많은 사람이 직장과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의사나 교사, 공무원이 선망의 직업이 된 것은 IMF로 인해 극단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만이 자신의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상태였으나 IMF로 인해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생존을 위협받게 되었다.

그 후 직업적 안정으로 재정적 안정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의사나 교사, 공무원같이 고용이 완전히 보장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직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안정시키기를 원했다.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은 돈이었다. 돈이 있으면 직업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생존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2000년대 중반에 ‘부자 되세요’ 대유행은 IMF의 후폭풍이다.
 

국민들은 이전보다 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도박적 투기를 한다는 것엔 아직 심리적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자를 많이 주는 저축을 찾고 수익률 높은 펀드를 찾았다.

지금보다는 훨씬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이 투기적, 도박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돈을 불리려 했다. 지금처럼 대학생 때부터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참여하려 하는 비율은 높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러나 초이노믹스는 국민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윤리성, 성실성을 완전히 걷어내 버렸다.

초이노믹스는 말했다

국가에서 대놓고 부동산을 통해 돈 놓고 돈 먹기를 권장하다 보니 국민들의 의식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국가권력이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삼국시대부터 당연히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상도, 전라도 간 지역감정은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가 대통령 더 해 먹고 싶다는 본인의 욕망 때문에 만들어 낸 감정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붕당정치도 불안한 왕권을 강화하기 원했던 선조의 욕심이 만들어 냈으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국가가 조장한 게르만 제일주의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감정이 아예 없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물밑에만 존재하던 감정을 물 위로 끄집어 올려 불을 붙인 건 국가의 권능이다.

돈을 벌어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았기 때문에 노동의 미덕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최근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라는 논문으로 화제가 된 김수현 씨도 논문을 쓰기 위해 매매 방(주식 투자자들이 모여서 각자 투자를 하는 곳)을 다니면서 그곳에 있는 중년의 투자자들이 젊은 사람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화제의 논문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를 쓴 서울대 인류학과 김수현 씨 (석사 졸업)
 

초이노믹스는 노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힘들게 일해서 돈 벌어봐야 아파트 샀다 팔았다 하면서 쉽게 버는 액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고 땅을 사라. 그걸로 돈을 벌어라. 힘들게 일할 필요 없다. 초이노믹스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땀 흘려 일하지 마라. 불로소득을 추구하라’

처음엔 소수의 사람들만 초이노믹스가 의미하는 바를 눈치챘다. 그들은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금융위기로 인해 떨어진 아파트값과 낮은 이자로 인해 높아진 전세금 비율을 이용해 적은 돈만 가지고 전세를 끼고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부동산 투기(일명 갭투기)를 시작했다.

불을 켜자마자 물이 끓을 수 없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자마자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약을 먹자마자 병이 낫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행동에 따른 결과가 나오는 데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 그 시간은 2년이다. 여기서 2년은 이론적으로 최소의 시간일 뿐 실제로는 외부적 영향 때문에 더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종부세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편 노무현 정부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잠잠해진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탓도 있지만, 참여정부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건 초이노믹스가 시작된 지 2년도 더 지난 2016년부터였다. 2016년부터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오르기 시작한다. 이때라도 대출 규제 등을 통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아야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부추겼다.

지나고 보니 IMF 이상의 변곡점이었다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란 형태로 나타나 투기에 참여한 소수가 돈을 버는 걸 보자, 사람들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다.

갭투자라는 말로 포장된 악질적인 부동산 투기(악질적이다.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해 일하지 않고 적은 돈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벌이는 악질적인 투기다)는 초이노믹스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갭투기는 갭투기로 돈을 번 당사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않는다. 불로소득을 제외한 어떤 가치도 만들지 못하며 생산성도 없다. 그 주제에 뻔뻔스럽게 자신들은 투기가 아닌 투자를 했고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에 갭투자란 포장지로 자신들을 포장한다. 비웃음 밖에 안 나온다.

건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0점도 아니고 마이너스 점수를 줘야 하는 행위이고, 권장은커녕 지양하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어쨌든 힘들게 일하지 않고 적은 돈을 이용해 큰돈을 거머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본 대다수의 국민들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때가 IMF 이상의 변곡점이었다.

노동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아파트를 가지고 적당히 쓱싹쓱싹해서 사바사바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적은 돈을 벌겠다고 땀을 흘리며 일하는 건 바보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많은 국민들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바뀌었다.

땀을 흘리며 힘들게 일한 사람이 어렵게 만들어낸 가치들을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뺏어가는 모습을 사회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힘들게 일한 사람이 불로소득을 올리는 사람보다 존경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백화점 갑질, 아파트 경비원 갑질같이 돈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만 계속 벌어졌다.

자영업자를 울리는 3대 갑질(건물주 갑질, 가맹본부 갑질, 대기업 갑질) 중 가장 악질적인 게 건물주의 임대료 갑질이라고 자영업자들은 호소한다.

이쯤 되니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놀고먹는 사람에 의해 바보 취급당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지대추구, 불로소득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 돼버렸다.

초이노믹스가 만들어낸 욕망의 열차, 비트코인 광풍

많은 국민들의 정신세계가 초이노믹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가즈아, 떡상, 존버로 상징되는 비트코인 광풍은 초이노믹스가 만들어 낸 기괴한 풍경이었다.

일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일확천금 하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나라 사회를 휩쓸었다. 비트코인이 뭔지, 이게 왜 가격이 오르고 떨어지는지 모르지만 힘들게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수많은 사람들이 광풍에 몸을 맡겼다.

왜 오르고 떨어지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면에서 암호화폐는 카지노보다도 훨씬 도박성이 강하다.

도박은 최소한 내가 왜 이겼는지 졌는지 어떻게 하면 이기는지는 알 수 있다. 암호화폐가 어떤 식으로 경제구조를 구성하고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아예 없었으며,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부 사기꾼이었다.

애초부터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손쉽게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망만 가득한 판이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이지 않고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박판보다도 훨씬 위험한 암호화폐에 돈을, 아니 인생을 걸었다.

‘김치 프리미엄(국내 암호화폐 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가 외국 시장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암호화폐 도박판이 특히 우리나라 사회를 휩쓸 수 있었던 건 초이노믹스가 바꿔놓은 국민들의 정신세계가 일등 공신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에서 암호화폐를 규제한다고 하자 청년 세대가 희망이 없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지 말아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수십만이 참여를 한 건 이 섬뜩한 코미디의 단면이다.

그들은 암호화폐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지만, 그걸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특히 좋다고 생각한 건 별다른 노력 없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이노믹스는 적은 돈과 적은 노력으로 돈을 버는 걸 장려했다. 초이노믹스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동산 투기나 불로소득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최소한의 체면 차리기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초이노믹스가 시작한 건 2014년부터였고 수많은 국민들이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을 바람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국민들의 정신세계가 바뀌기 시작한 2017년 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