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악플로 신음…스포츠 기사 댓글 기능 폐지 요구 거세져

“죽는 게 쉽진 않겠지만, 많이 미안해 엄마 그냥 미안하단 말 밖에 못하겠네.”

지난 1일 배구 선수 고유민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 시즌까지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에 몸담았던 고유민은 선수 생활 내내 저속한 악성 댓글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을 꿈꾸던 26살 청춘은  익명성에 가려진 날카로운 창에 수없이 찔린 채 고통을 받았다.

악성 댓글은 ‘연예계’에선 오래전부터 뿌리 깊은 문제가 됐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아이돌’ 연예인들이 이 악성 댓글로 인해 세상을 등진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화려함 가득한 수많은 연예인의 이면엔  악성 댓글로 인한 상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뉴스의 악플러는 일명 ‘ 토쟁이’?

악플은 스포츠라고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 기사의 댓글 작성자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 특정 팀과 선수의 팬, 그리고 스포츠 토토 과몰입자 일명 ‘토쟁이’다.

전자의 경우 댓글에는 애정있는 비판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돈이 걸린 탓인지 대체로 무분별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고 그 수위 역시 높다. 악플의 대상도 팀과 선수 그리고 그 가족까지 가리지 않는다.

이들에겐 자신의 베팅에 손해를 끼친 모든 팀, 모든 선수는 공격의 대상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팀 간 전력 편차가 커 결과를 도출하기 쉬운 여자 농구, 여자 배구 등의 종목에 악성 댓글이 조금 더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 여자 농구 관련 기사의 댓글을 찾아보면, 눈이 절로 찡그려지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기사뿐 아니라 개인 SNS 계정까지 직접 찾아가 외모 비하, 성적 비하 발언 등 도 넘은 인신공격을 쏟아내고 있다.

■야구의 인기와 악플량은 정비례?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스포츠를 꼽자면 단연 프로야구를 들 수 있다. 야구는 매일 매일 수많은 이슈가 발생하고 그만큼 기사량도 타 종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많다. 하루 백 개가 넘는 기사가 쏟아지고 기사마다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늘어나는 댓글만큼 자연스레 악성 댓글의 양도 늘고 있다.

트레이드 파문으로 지난 시즌 이슈의 중심에 섰던 한화 이용규. 평소 강한 인상에 댓글에 무덤덤할 것 같기만 하던 그도 가족을 향한 악성 댓글은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제가 한 행동이나 제 야구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가족들에게까지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은 한번 생각해주시고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 많이 상처를 받더라고요.”

하지만 최근 야구 선수를 향한 도 넘는 악성 댓글 세례에 이제 스포츠계도 적극적인 맞대응을 예고하며 ‘악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LG트윈스 오지환은 2018년 아시안게임 전후로 ‘병역 회피’ 논란이 불거져 악성 댓글에  지금까지도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타겟은 이제 선수 본인을 넘어 가족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 오지환 측은 어제(3일) 도를 넘는 악성 댓글 세례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오지환의 소속사 플레이아데스 측은 “최근 일련의 악성 댓글과 직접 메시지(DM) 등을 통한 도 넘는 비방으로 소속 선수들과 가족들이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더는 이를 방치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내부적인 논의와 법률적인 검토를 거쳐 선수들과 그의 가족들이 느낄 모욕감에 대하여 앞으로는 정식 대응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박병호, 유희관, 이정후 등 프로야구 주요 선수들이 소속된 에이전시 리코스포츠 측도 향후 소속 선수들을 향한 악성 댓글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예고한 상황이다.

■포털 스포츠 기사에도 댓글 폐지 가능할까?

악성 댓글로 인한 연예인들의 피해가 점점 커지자, 포털들은 속속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를 폐지했다. 네이버가 지난해 3월 가장 먼저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했고, 다음카카오도 10월 댓글 창을 막았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네이트마저 연예 뉴스 댓글 기능을 차단했다.

이에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도 연예 기사처럼 댓글 기능 차단을 요구했다. A 구단 관계자는 한 포털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를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담당자의 답변은 단호했다고 말한다.
“저희가 스포츠 기사 댓글로 먹고사는 곳인데,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는 어려울 것 같아요.” 씁쓸한 뒷맛이 남는 대답이다.

탁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승민 IOC 위원도 오늘(4일)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 법안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유 위원은 SNS를 통해 “연예 뉴스의 댓글 금지와 같이 스포츠 선수들과 스포츠 뉴스에서의 댓글 금지법을 발의해줄 것을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님들께 요청합니다.”라며 스포츠인이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을 시스템이 부족하다며 인격 모독성 비난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기류 속에 스포츠 기사의 댓글 폐지론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스포츠 팬들의 건전한 공론장이 돼야 할 댓글 공간이 점점 변질되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고 있는 지금, 주요 포털들도 이제 스포츠 기사의 악성 댓글 문제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양대 포털 모두 당장 스포츠 기사의 댓글 기능을 폐지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악성 댓글 근절을 위한 노력은 이어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카카오의 관계자는 스포츠 기사의 악성 댓글 상황에 대해 주의 깊게 인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런 악성 댓글 이슈가 일어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현재 악플 방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악성 댓글 근절 노력도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욕설 자동 음표 변환,  AI를 활용해 욕설 자동 차단 등 악성 댓글을 자제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측도 “저희는 댓글 공간이 스포츠 팬들의 의견이 모이는 하나의 공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폐지할 계획은 없지만, 욕설 인식 시 댓글 차단 기능 등 다양한 조치를 마련할 계획입니다.”라며 댓글 폐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열성적인 축구 팬들을 흔히 ‘서포터’라고 부르곤 한다. ‘지지자’라는 뜻의 서포터. 팀과 함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팬이 없는 프로스포츠는 존재 의미가 없듯, 팬 역시 선수들이 없다면 프로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것이든, 스포츠 베팅을 즐기는 것이든 팬과 선수는 프로스포츠 산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늘 한국배구연맹 KOVO(코보)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3대 대형 포털에 스포츠 기사 댓글 기능 개선을 요청했다.

코보 측은 앞으로 포털사이트 악성 댓글을 비롯한 선수 SNS 계정의 악성 댓글, 인격 모독 및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의 직접 메시지를 선수로부터 제출받아 이에 관한 법률 자문과 검토를 진행한 후 연맹 차원에서 법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포츠계 악성 댓글을 뿌리 뽑기 위한 서막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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